2008. 12. 8. 01:11

소통, 정책 성공의 충분조건(?)

최근 SERI에서 <정부정책 성공의 충분조건: 소통>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연구자들은 보고서 첫머리에 "정부의 정책이 성공적으로 시행되는데 있어 '소통'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적고 있다.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되면서도 '아니 소통없이도 성공적인 정책'이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알고보면 대수롭지 않지만 이를 깨닫기 전과 비교하면 참으로 중요한 인식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보고서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가 아닌 연구자들에 의해서 씌여졌다는 점도 감안 해야겠다. 

연구자들은 정책성공의 핵심조건을 '정책디자인'과 '소통'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정책디자인'은 정책성공의 필요조건으로서 '이해관계자들에게 보여지는 좋은 정책콘텐츠(What)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에 '소통'은 정책의 추진력과 수용도를 높이는 수단(How)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접근한다면 다분히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책소통'이란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상호 의견수렴과 설득과정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여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실효성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소통'의 역할은 크게 달라지게 된다(따라서 커뮤니케이션 실무자들의 인생도). 먼저 실효성이 투입물 대비 산출물이라는 '효율성'(efficiency) 차원에서 정의된다면 소통의 목적은 순수하게 도구적인 것이 되고 만다.  이렇게 소통의 목적을 도구적으로 정의해 놓을 경우 쌍방향적인 소통의 가능성은 본질적으로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미 만들어 놓은 정책에 대해서 '바꾸자', '연기하자', '폐지하자'고 하는 소통은 이러한 틀에서는 결코 논리적으로 허용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소통'을 '효과성'(effectiveness)차원에서 접근할 경우, 소통은 이미 만들어진 정책의 효과적인 집행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목적을 중심으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통해 이들의 요구가 반영된 정책을 수립, 실행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정책디자인과 소통은 뚜렷하게 구별하기 어렵게 된다.

하지만 보고서 뒷 부분에서는 소통이 가장 핵심적인 요소임을 밝히고 있다(요약문에서는 다소 모호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정책성공을 위한 소통의 세가지 역할을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1) 정책디자인 품질을 높이기 위한  정책설계, 집행, 사후평가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의 의견수렴과 피드백 강화
2) 소통 로드맵의 전략적 설정과 실행(이해관계자와의 소통)
3) 정책담당자의 소통능력 강화 (정책 전담기관 내 소통).

결국 소통은 이해관계자와의 대화를 통한 관계관리 뿐만 아니라 정책디자인의 품질에도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쌍방향 소통을 강화한다는 것은 단순히 정책부서/부처의 타겟설정 및 실행만 의미하지 않는다. 조직에서는 대체로 주어진 과제를 이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사고하는 반면에 해당 조직을 위협(?)하는 주요 이슈는 이해당사자들에 이해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연구자들의 인식과는 달리 넓은 의미에서 소통은 정책홍보의 필요충분조건이 된다고 하겠다. 전방위적으로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져야만 충실한 정책디자인이 가능하게 되고, 민의가 충분히 반영된 프로그램의 경우 효과적인 소통이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2008. 12. 7. 21:09

오바마는 양치기소년(?)

최근 미국 플로리다 주 하원의원(공화당) Ileana Ros-Lehtinen 이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중간에 끊어버렸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가 화제다. Ros-Lehtinen 하원의원은 대통령선거 기간중 공화당 부통령 후보 페일린이 캐나다 코미디언의 장난전화에 속은 바 있어 '낚이지 않으려고' 그 목소리 흉내(?)를 칭찬하며 끊었다는 것이다.
 
Ros-Lehtinen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뒤이어 걸려온 오바마의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인 Rahm Emanuel의 전화도 끊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이 속한 외교 위원회의 Howard Berman 외교 위원장의 전화가 있은 뒤에야 오바마 당선자와의 통화가 이루어졌다. 보도에 따르면 나중에 이 의원은 공화당 의원이며 비교적 무명인 자신에게까지 민주당 대통령 당선자가 직접 전화를 걸어올 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에피소드는 현대 사회에서 낯선 사람과 진지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툭하면 걸려오는 보이스 피싱 전화로 온 국민이 피해를 당하고 있는지 오래다. 그런데 정치인 상대 '낚시전화'에만 신경을 쏟은 그 하원의원처럼 전화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의 경우 대부분 뭔가 홀린 듯이 그대로 상황에 몰입되었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대해 스스로 자신이 평소에 걱정하고 있던 상황을 덧입혀 생각하고 이에 따라 행동을 하는 것이다. 전화는 단순히 상황의 단초만 제공해 주지만 피해자 스스로 그 상황과 상호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전화나 이메일 등 신분을 속인 행동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소비자, 기자,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의 이해관계자들을 일상적으로 담당해야 하는 PR담당자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흔히 상황을 가정하거나 유추해서 던지는 언론의 낚시성 질문에 지레 짐작으로 답변하지 않고, 객관적인 상황과 회사의 핵심가치를 바탕으로 구성된 포지션 페이퍼와 핵심메시지에 충실하게 답변하는 수 밖에 없겠다.

PR대행사 역시 클라이언트의 말만 듣고 서비스를 진행하다가 본의아니게 부정확하거나 진실되지 않은 회사 및 상품관련 정보에 '낚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행사의 실무자들이 기본적인 fact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고 넘어갈 경우, 도움을 준 담당기자들을 포함해서 사회적인 물의까지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는 철저한 자료확인, 기본적인 응대요령에 따른 답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이해관계자와의 중장기적인 관계관리 등 원칙에 더욱 충실하도록 해야겠다.
 
2008. 12. 4. 00:06

난 뉴욕스타일? 아니면 뉴욕지하철 공사 스타일?

Big Apple, New York, New Year's Eve...
미국 동부의 교외지역에 사는 유학생이나 교포 가운데에는 가끔씩 뉴욕에 다녀와야 사람사는 것같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과 달리 광활한 땅위에 넓게 퍼져 사는 미국에서는 뉴욕과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삶이 단조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뛰어다니는 사람들, 마구 낙서가 된 지하철, 줄지어 늘어선 노란색 택시들을 보게 되면, 오래간만에 '서울'나들이를 한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꼭 멋내기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뉴욕, 뉴요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PR Blog News를 운영하고 있는 마크 로즈가 뉴욕지하철의 메시징에 관한 글을 올렸는데 몇 번 뉴욕에 가 본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내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에 대해서 되돌아 보게 한다. ㅜㅜ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소리인지는 집중해서 읽어봐야 겠지만 한 눈에 봐도 좋은 메시지는 절대로 아닌 것 같다. 좋은 메시지는 상대방이 금방 알아들을 수 있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간결한 메시지어야 하는데, 정작 내 스타일은 뉴욕지하철 스타일에 더 가까운지 모르겠다. 최근 더 찰싹 달라붙는다는('now even stickier') 히스의 Made to Stick 영문 개정판이 나왔다는데 원서를 구해서 다시 봐야하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