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도(Trust)'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9.02.27 독일, 너 마저...
  2. 2009.01.01 "오차가능성 타사 대비 1만배 떨어집니다. 하지만"
  3. 2008.12.07 오바마는 양치기소년(?)
  4. 2008.10.22 '소문 권하는 사회' 4
  5. 2008.08.13 저신뢰도 사회
2009. 2. 27. 08:15

독일, 너 마저...

'위험사회(Risk Society)"라는 저서로 유명한 율리히 벡 교수는 독일인이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독일은 세계적인 과학기술 선진국이다. 그런데 최근 독일산 식품첨가물에서 멜라민이 검출되어 국내 식품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사례는 현대사회가 위험사회의 특성을 지니는 이유, 그리고 신뢰사회와 위험사회가 왜 '비운'의 쌍둥이인지 생각해 볼 기회인 것 같다.    

독일이라는 선진국가의 이름이 주는 신뢰는 후진국 어느 나라가 전달할 수 있는 것보다 강하며 이것이 바로 국가 브랜드의 가치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례로 인해 적어도 한국국민들 사이에선 과학기술 강국으로서 독일이 쌓아온 크레딧을 많이 깎아먹은 듯하다.  

사회전반적으로 신뢰도가 낮은 사회에서는 모든 것을 각자가 알아서 확인, 또 확인해야만 한다. 부정부패가 심각한 사회에서라면 입찰서류 제출을 접수할 경우 각 단계마다 확인해야 한다. 서류가 위조된 것은 아닌지, 언급된 학교나 직장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 직인이 위조된 것은 아닌지 이 모든 것을 확인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공장에서 모든 원재료 및 부품에 대해서 안전성, 적합성 검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기다 글로벌 기업들에게 흔히 요구되는 원자재 단계에서부터 친환경성, 유기농, 아동노동 미투입 확인(child labor-free)여부까지 세계곳곳을 찾아 다니며 확인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우리는 이전 단계에서 검증된 제품이나 서류는 안전하다거나 사실로 '믿고' 다음 단계의 공정이나 거래를 진행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신뢰와 신뢰의 고리를 더 이상 연결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간에 하나의 단계를 '무사히' 통과한 '위험'요소는 사회적 인프라라고 할 수 있는 '신뢰(trust)'를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사회를 순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는, 따라서 '위험사회'에서는, 대규모 위기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 

물론 문제발생 원인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이전 단계나 다른 기관의 신뢰도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다. 이미 상품 사용자들의 대화와 사용후기를 통해서 문제점을 찾아 내고 이를 신속하게 교정할 수 있는 '소통'이 가능한 사회다. 블로그와 커뮤니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한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 대안으로서의 사회적인 안전장치 또는 검증장치로 이미 작동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기업이 이러한 소비자들로부터 끊임없는 문제제기(challenge)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문제의 해결방향 및 속도, 그리고 궁극적인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2009. 1. 1. 15:21

"오차가능성 타사 대비 1만배 떨어집니다. 하지만"

연말연초라서인지 아니면 어두운 경제전망 탓인지,어느 벤처의 성공에 관한 기사가 눈에 띄였다. 대기업체에서 잘 나가던 직원이 창업 8년 만에 회사를 매출 220억대의 벤처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내용이다. 물론 IT분야 전공도 아닌 내가 이 기사에서 주목했던 것은 매출액이나 기술력에 관한 내용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들의 기술력만 믿고 전시회장을 찾았다가 보기 좋게 실패하고 난 뒤에 이들이 가졌던 깨달음에 관한 부분이었다.

업체 대표가 세계지문인식경연대회(FVC)에서 연거푸 1등을 하면서 느낀 것은  "기술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신뢰였어요. 신뢰가 쌓여야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죠."
그 후부터는 솔직하게 고객들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남들이 지문 인식 오류비율이 0.0001%라고 선전할 때, 우리는 정직하게 1%대라고 밝히고 언제 오류가 나는지를 사실대로 설명했죠.
그렇게 신뢰가 쌓이니 주문이 크게 늘기 시작했어요."

솔직하게 오차율을 밝히고 이에 대한 설명을 명확하게 해 주는 방식으로 마케팅 방법을 바꿨다는 것이다. 결국 남들 보다 무려 오차발생 가능성이 1만배나 뒤진다는 사실을 적극 알리는 것은, IT회사로서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진정성이 효과를 발휘해 시장에서 고속성장을 해 올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의 성공이 단순히 이러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에만 기인한다고 볼 수는 없다. 경연대회 연속 1위라는 사실(fact)를 바탕으로 '낚시성' 멘트를 빼고 전달하니까 시장에서 이를 제대로 받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는 분명 진실성에 바탕을 둔 메시지를 통한 성공사례였다고 볼 수 있겠다. 


2008. 12. 7. 21:09

오바마는 양치기소년(?)

최근 미국 플로리다 주 하원의원(공화당) Ileana Ros-Lehtinen 이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중간에 끊어버렸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가 화제다. Ros-Lehtinen 하원의원은 대통령선거 기간중 공화당 부통령 후보 페일린이 캐나다 코미디언의 장난전화에 속은 바 있어 '낚이지 않으려고' 그 목소리 흉내(?)를 칭찬하며 끊었다는 것이다.
 
Ros-Lehtinen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뒤이어 걸려온 오바마의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인 Rahm Emanuel의 전화도 끊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이 속한 외교 위원회의 Howard Berman 외교 위원장의 전화가 있은 뒤에야 오바마 당선자와의 통화가 이루어졌다. 보도에 따르면 나중에 이 의원은 공화당 의원이며 비교적 무명인 자신에게까지 민주당 대통령 당선자가 직접 전화를 걸어올 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 에피소드는 현대 사회에서 낯선 사람과 진지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툭하면 걸려오는 보이스 피싱 전화로 온 국민이 피해를 당하고 있는지 오래다. 그런데 정치인 상대 '낚시전화'에만 신경을 쏟은 그 하원의원처럼 전화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의 경우 대부분 뭔가 홀린 듯이 그대로 상황에 몰입되었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대해 스스로 자신이 평소에 걱정하고 있던 상황을 덧입혀 생각하고 이에 따라 행동을 하는 것이다. 전화는 단순히 상황의 단초만 제공해 주지만 피해자 스스로 그 상황과 상호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전화나 이메일 등 신분을 속인 행동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소비자, 기자,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의 이해관계자들을 일상적으로 담당해야 하는 PR담당자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흔히 상황을 가정하거나 유추해서 던지는 언론의 낚시성 질문에 지레 짐작으로 답변하지 않고, 객관적인 상황과 회사의 핵심가치를 바탕으로 구성된 포지션 페이퍼와 핵심메시지에 충실하게 답변하는 수 밖에 없겠다.

PR대행사 역시 클라이언트의 말만 듣고 서비스를 진행하다가 본의아니게 부정확하거나 진실되지 않은 회사 및 상품관련 정보에 '낚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행사의 실무자들이 기본적인 fact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고 넘어갈 경우, 도움을 준 담당기자들을 포함해서 사회적인 물의까지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는 철저한 자료확인, 기본적인 응대요령에 따른 답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이해관계자와의 중장기적인 관계관리 등 원칙에 더욱 충실하도록 해야겠다.
 
2008. 10. 22. 23:56

'소문 권하는 사회'

최근 한겨레21에서는 루머관련 특집기사<소문, 불신시대의 바이러스>를 실었다. 특집기사는 소문이 '전달자나 상황에 따라 괴담, 첩보, 정보, 제보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며 '소문의 착시효과' 때문에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고 적고 있다. '소문의 착시효과'란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단 한 가지만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사람들은 이후의 소문들을 사실일 것으로 믿게 되는 경향을 말한다. 즉 사람들이 객관적인 사고를 하기 보다 편향된 사고의 개연성을 무한대로 높이는 경향이라고 하겠다. 특집기사에서는 언론검열이 이루어지던 1980년대에 처음 나타났던 '찌라시'가 인터넷 시대에서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는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진단하듯이 우리가 아직 저신뢰 사회에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글에서는 우리 사회의 '소문'과 관련해 각 분야의 교수들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 홍성태 교수(사회학)는 독재시절의 폐해로 인해 아직까지 우리사회가 불신사회로 머무르고 있으며 국민들이 '국가나 사회를 믿지 못하고 가족을 중심으로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난민 사회'적 특성'이 소문을 키워 나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편 심리학자인 황상민 교수는 사회구성원들의 독립적 판단능력이 떨어질 수록 소문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사실 여부 보다 개연성을 더 중시하는데 이는 '판단의 기준이 자신이 아니라 외부에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반면에 강장묵 교수(컴퓨터공학)는 기존 아날로그 시대의 루머와 구별되는 '네트워크 루머'에 주목한다. 예전에는 루머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입을 타고 전해지면서 이야기가 증폭되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다수의 대중과 전문가들이 하나의 소문을 놓고 검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전과 달리 요즘에는 초단기간내에 확산된 텍스트나 '파일'이 존재하고 있어서 진위에 대한 평가의 근거가 되고 있다.

필자들이 '소문산업'이라고 부르고 있듯이 이미 소문은 우리 사회의 어엿한 경제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연예인, 증시에 관한 소문은 '찌라시'에 소개되고, '찌라시'는 관련 보도를 낳고, 관련보도는 다시 소문을 사회전반으로 확대 재생산한다. '공인'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추측성 기사', '루머'와 '공시제도'의 빈 공간을 노리는 투기세력들에 의해서 이미 소문은 하나의 '산업'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게 다 PR인들의 탓이다. 기업이, 정부가, 시민단체가 투명하지 않고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므로. 하지만 수많은 PR인들이 열심히 외부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미래는 어둡지 않다. 각자 자신이 속한 조직을 이해관계자들의 관점에서 객관화하고 기업의 핵심가치가 담긴 커뮤니케이션을 지속적으로 진행한다면 우리 사회도 조금씩 믿고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커뮤니케이션은 본질적으로 '변화'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2008. 8. 13. 10:08

저신뢰도 사회

최근 매일경제에서 조사한 WVS(World Value Survey) 결과에 따르면 우리사회는 사람도 정부도 못믿을 사회라고 한다. 이번 조사결과는 중앙일보에서 매년 조사하고 있는 파워조직의 영향력과 신뢰도 조사 결과와도 대체로 부합되는 것이다.

사람도 정부도 못믿는 우리 세상에서 PR의 역할은 과연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책임이 있을까?

학자들은 신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근간'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한다 .매일경제가 인용한 경제학자인 스티븐 낵과 필립 키퍼박사에 따르면 '다른 조건이 동일한 상태에서 국가 신뢰지수가 10%하락하면 경제성장률은 0.8%포인트 하락한다고 한다.

조사결과, 정부가 정책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의견이 전체 응답자의 59.7%였으며  정책형성과정에서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무려 78%에 다다른다. 또한  조사결과 젊은 층, 여성일수록 타인 및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국제적으로 비교했을 때 북유럽 국가에서 사회적 신뢰수준이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었다.
한국사회의 신뢰도가 중국의 절반에 못미친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상식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의심이 많기로 소문난' 중국인들 보다 우리 스스로 더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라고 하겠다.

신뢰붕괴 사회의 위기, 과연 누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

전체 정책과정에서 실질적인 선택권, 거부권이 있었든 아니면 단순 실행만을 맡았던 간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의 책임이 무겁다고 하겠다.
국민들의 '참여'를 내세운  참여 정부 때는 정치적인 철학에 따라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정작 국민들이 실질적인 내용면에서 소외되는 경향을 보였다면, 현 정부에서는 형식적이나마 참여의 과정 조차 생략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경쟁의 심화가 이런 불신의 사회를 만들었을 수 있으며, 믿었던 주위로 부터 배반당한  기억이 이를 강화했을 수 도 있겠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안정과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이며, 약속을 지키는 사회일 것이다. 진실된 '소통'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절실해 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