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경우 지상파 TV방송국은 '전파의 공공성' 때문에 신문과 달리 중립적인 언론매체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따라 상업성이 강조되면서, 방송국 역시 다른 영리조직과 별 차이가 없는 또 하나의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특히 지난 한해 동안에는 광우병보도 관련이슈, 서태지의 방송프로그램 편집권 참여요구, 연말 방송국 시상식 관련 이슈 등을 비롯해 전통적인 방송국의 자체 결정사항과 관련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요구사항이 분출되었다. 반면에 각 방송국은 이러한 새로운(?) 요구사항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지는 않은 것 같다. 최근 방송사에 제기된 주요 '참여'이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프로그램 편집권에 대한 참여요구
얼마전 온라인 상에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던 서태지의 편집권 요구 논란을 비롯해 주요 기획사들의 방송사에 대한 '참여요구'는 PD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성역'침해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기획사나 방송PD들은 각자 해외사례를 들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했다.
당시 서태지에 대한 선호도 및 편집권에 대한 입장 차이에 따라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지만. 분명한 점은 많은 시청자들이 더이상 방송사의 절대적인 '편집권'이라는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기업 대표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들은 방송인터뷰를 한 시간 하고 나더라도 본 방송에서는 고작 30초 분량으로 편집되어 나가기 일쑤고, 그나마 자신의 취지와 부합된 경우라면 다행으로 여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방송사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현실은 방송 콘텐츠로 사용되는 연예인, 기업 홍보담당자, 또는 일반 시청자들의 참여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다.
2. 방송대상 시상식에 대한 시청자 반발
"연기대상이 무슨 개근상, 선행상이냐"라고 비아냥 대던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지난해 MBC 연기대상의 공동수상 결정에 반발한 일부 시청자들은 아고라 국민청원까지 벌이고 있다. 많은 언론매체에서 관련기사를 다루기에 이르자 해당 방송국의 관계자는 연기대상의 경우 단순한 개인 연기자에 대한 시상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만일 연기력만 가지고 본다면 매년 중견연기자들이 대상을 차지할 것이며 현실적으로 시청률과 전체 제작진의 기여도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결국 이번 논란의 본질은 연기 대상에 대해서 많은 시청자들과 방송사에서 생각하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언제든지 '파격'이 있을 경우에는 논란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시청률과 상업성이 중요한 방송사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낮았던 드라마의 주인공 선정이 '파격'이라고 생각했던 반면 불만을 지닌 시청자들은 연기력이나 드라마 완성도에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의 선정이 '파격'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사전에 방송대상의 의미에 대한 시청자들의 이해가 있었다거나 이러한 '파격'적인 수상자 선정이 좀 더 계획되고 준비되었다면 불 필요한 논란과 시상식의 권위에 대한 문제제기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가지 논란의 공통점은 전통적으로는 당연하게 행사되던 방송사의 결정권에 대해서 제작 파트너와 시청자들이 자신의 의사표현을 넘어서 의견을 관철시키고자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방송사의 자율성이 많은 부분 인정되었다. 자율성이 보장되었다기 보다, 방송사 제작과정 및 내부의 결정과정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시청자들의 신속한 참여가 사실상 비용과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불가능했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점차 확대되고, 신속한 상호의견 교환 기회가 확대되면서 최근에는 프로그램에 대한 실시간 참여 및 시청자 투표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이전에는 당연히 내부에 귀속되었던 가치 및 권한들이 이해관계자와의 새로운 역학 관계 속에서 새롭게 재협상을 요구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속에서 방송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사회의 민주화가 신장되면서 앞으로 권력의 정당성은 주요 사회주체와의 협상을 통해 권위를 인정받게 되는 성격이 강해진다. ('negotiated power'). 즉 권력은 스스로 클레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만큼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각 방송국은 자신의 권위와 권한을 끊임없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해 내고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은 항상 정치적이며 양방향 소통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1. 프로그램 편집권에 대한 참여요구
얼마전 온라인 상에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던 서태지의 편집권 요구 논란을 비롯해 주요 기획사들의 방송사에 대한 '참여요구'는 PD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성역'침해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기획사나 방송PD들은 각자 해외사례를 들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했다.
당시 서태지에 대한 선호도 및 편집권에 대한 입장 차이에 따라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었지만. 분명한 점은 많은 시청자들이 더이상 방송사의 절대적인 '편집권'이라는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기업 대표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들은 방송인터뷰를 한 시간 하고 나더라도 본 방송에서는 고작 30초 분량으로 편집되어 나가기 일쑤고, 그나마 자신의 취지와 부합된 경우라면 다행으로 여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방송사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현실은 방송 콘텐츠로 사용되는 연예인, 기업 홍보담당자, 또는 일반 시청자들의 참여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다.
2. 방송대상 시상식에 대한 시청자 반발
"연기대상이 무슨 개근상, 선행상이냐"라고 비아냥 대던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지난해 MBC 연기대상의 공동수상 결정에 반발한 일부 시청자들은 아고라 국민청원까지 벌이고 있다. 많은 언론매체에서 관련기사를 다루기에 이르자 해당 방송국의 관계자는 연기대상의 경우 단순한 개인 연기자에 대한 시상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만일 연기력만 가지고 본다면 매년 중견연기자들이 대상을 차지할 것이며 현실적으로 시청률과 전체 제작진의 기여도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결국 이번 논란의 본질은 연기 대상에 대해서 많은 시청자들과 방송사에서 생각하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언제든지 '파격'이 있을 경우에는 논란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시청률과 상업성이 중요한 방송사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낮았던 드라마의 주인공 선정이 '파격'이라고 생각했던 반면 불만을 지닌 시청자들은 연기력이나 드라마 완성도에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의 선정이 '파격'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사전에 방송대상의 의미에 대한 시청자들의 이해가 있었다거나 이러한 '파격'적인 수상자 선정이 좀 더 계획되고 준비되었다면 불 필요한 논란과 시상식의 권위에 대한 문제제기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가지 논란의 공통점은 전통적으로는 당연하게 행사되던 방송사의 결정권에 대해서 제작 파트너와 시청자들이 자신의 의사표현을 넘어서 의견을 관철시키고자 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방송사의 자율성이 많은 부분 인정되었다. 자율성이 보장되었다기 보다, 방송사 제작과정 및 내부의 결정과정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시청자들의 신속한 참여가 사실상 비용과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불가능했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점차 확대되고, 신속한 상호의견 교환 기회가 확대되면서 최근에는 프로그램에 대한 실시간 참여 및 시청자 투표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이전에는 당연히 내부에 귀속되었던 가치 및 권한들이 이해관계자와의 새로운 역학 관계 속에서 새롭게 재협상을 요구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속에서 방송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사회의 민주화가 신장되면서 앞으로 권력의 정당성은 주요 사회주체와의 협상을 통해 권위를 인정받게 되는 성격이 강해진다. ('negotiated power'). 즉 권력은 스스로 클레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만큼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각 방송국은 자신의 권위와 권한을 끊임없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해 내고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은 항상 정치적이며 양방향 소통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연말연초라서인지 아니면 어두운 경제전망 탓인지,어느 벤처의 성공에 관한 기사가 눈에 띄였다. 대기업체에서 잘 나가던 직원이 창업 8년 만에 회사를 매출 220억대의 벤처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내용이다. 물론 IT분야 전공도 아닌 내가 이 기사에서 주목했던 것은 매출액이나 기술력에 관한 내용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들의 기술력만 믿고 전시회장을 찾았다가 보기 좋게 실패하고 난 뒤에 이들이 가졌던 깨달음에 관한 부분이었다.
업체 대표가 세계지문인식경연대회(FVC)에서 연거푸 1등을 하면서 느낀 것은 "기술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신뢰였어요. 신뢰가 쌓여야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죠."
그 후부터는 솔직하게 고객들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남들이 지문 인식 오류비율이 0.0001%라고 선전할 때, 우리는 정직하게 1%대라고 밝히고 언제 오류가 나는지를 사실대로 설명했죠. 그렇게 신뢰가 쌓이니 주문이 크게 늘기 시작했어요."
솔직하게 오차율을 밝히고 이에 대한 설명을 명확하게 해 주는 방식으로 마케팅 방법을 바꿨다는 것이다. 결국 남들 보다 무려 오차발생 가능성이 1만배나 뒤진다는 사실을 적극 알리는 것은, IT회사로서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진정성이 효과를 발휘해 시장에서 고속성장을 해 올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의 성공이 단순히 이러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에만 기인한다고 볼 수는 없다. 경연대회 연속 1위라는 사실(fact)를 바탕으로 '낚시성' 멘트를 빼고 전달하니까 시장에서 이를 제대로 받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는 분명 진실성에 바탕을 둔 메시지를 통한 성공사례였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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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대표가 세계지문인식경연대회(FVC)에서 연거푸 1등을 하면서 느낀 것은 "기술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신뢰였어요. 신뢰가 쌓여야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죠."
그 후부터는 솔직하게 고객들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남들이 지문 인식 오류비율이 0.0001%라고 선전할 때, 우리는 정직하게 1%대라고 밝히고 언제 오류가 나는지를 사실대로 설명했죠. 그렇게 신뢰가 쌓이니 주문이 크게 늘기 시작했어요."
솔직하게 오차율을 밝히고 이에 대한 설명을 명확하게 해 주는 방식으로 마케팅 방법을 바꿨다는 것이다. 결국 남들 보다 무려 오차발생 가능성이 1만배나 뒤진다는 사실을 적극 알리는 것은, IT회사로서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진정성이 효과를 발휘해 시장에서 고속성장을 해 올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의 성공이 단순히 이러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에만 기인한다고 볼 수는 없다. 경연대회 연속 1위라는 사실(fact)를 바탕으로 '낚시성' 멘트를 빼고 전달하니까 시장에서 이를 제대로 받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는 분명 진실성에 바탕을 둔 메시지를 통한 성공사례였다고 볼 수 있겠다.
언제부턴가 어느 이동통신회사 TV광고에 나온 '하면되고송'이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는 이와 유사하면서도 냉소주의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뿐이고~'라는 표현이 올해 하반기에 제대로 '떴다'. 여기저기서 '~뿐이고'를 패러디하고 있다. 물론 나도 패러디를 즐기는 편으로 그러다 욕도 많이 먹고 있다. :( 하지만 난 웬지 이 '뿐이고~'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관계의 단절이나 무시'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인가 보다. 물론 난 지금 내가 오바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래 오바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흔히 이야기하는 '이해관계자와의 관계망' 속에서 살고 있다. 이른바 남의 실패가 나의 성공으로 바로 이어지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의 행위에 따라 내가 행사할 수 있는 옵션과 재량권이 달라지는 사회속에서 살고 있다. 미국 자동차 Big 3가 무너지면 주요 경쟁사인 도요타 자동차를 비롯해 현대자동차까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업계의 분석은 사실 직관적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많은 경쟁업체들 역시 Big 3관련 부품업체들로부터 공통부품을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올 한해동안 온 나라가(물론 다른 나라 상황은 잘 모르니까..) 한 해동안 '~뿐이고, ~하면 되고'를 실행해 왔다. 특히 대기업과 정치인들은 애써 귀를 막고, 입을 막고, 눈을 가리고... 자신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 주위의 행위자들을 무시한 채로 일방적으로 행동해 온 것이다. 그런데 우리같은 일반 소시민들도 자발적으로 말뿐이지만 '뿐이고'를 연발한다. 아마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그런 '일탈'을 꿈꾸는 탓일지도 모른다.
온라인 업계의 '삼성' 네이버가 온라인 신문협회에 이어 IT 업체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기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봄철 아고라 폭풍에도 건재했던 네이버에 심상치 않은 연합전선이 펼쳐지고 있는 듯하다. 소통의 채널을 꽉 막은채 '뿐이고'를 즐기던 강한 조직, 권력자들이 그동안 무시했던 상대를 향해 쩔쩔매며 '벗 쮸~'를 연발하게 될 상황을 상상해 본다. 그래서 평소에 잘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