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11. 00:44

정도(正道)와 정석(定石)

최근 회사에서 외국인 CEO를 대상으로 미디어트레이닝을 진행했다. 많은 외국인 CEO들이 그렇듯이 해당 CEO께서는 상당히 집중해서 적극적으로 트레이닝에 참여해 주셨다. 또한 외국계 기업의 자유로운 분위기 덕분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홍보팀의 의견도 같이 수렴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미디어트레이닝에는 김경해 사장님께서 주요 이슈별로 맥을 짚어가며 해당 CEO와 토론식으로  미디어 트레이닝 리뷰를 이끌어 주셨다. 덕분에 이번 미디어 트레이닝은 현장에서 바로 참가자(trainee) 및 참모진(홍보담당자)와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한가지 특이했던 부분은 해당 CEO께서 민감한 이슈를 가정한 질문에 대해서 사실(fact)에 기반해서 정도(正)에 따라 대응해 주셨다는 점이다. 사실 해당 질문은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CEO였더라면 아주 쉽게 답변하고 넘어갔을 부분이었다. 즉 해당 이슈의 중요성이 높을수록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우리 기업은 단호한 반박(refutation) 또는 부인(denial)하는 것이 사실상 정석()이다시피 하다. 아주 중요한 상황에 처할 경우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그 댓가가 훨씬 크기 때문에,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하얀 거짓말(white lies)에 대해서는 스스로 관대해지고 만다. 

해당 CEO의 고집스러운 답변을 들으면서 순간 우리 사회에서 손바닥 뒤집듯이 행사되는 커뮤니케이션의 '자유'(?), 혹은 지나칠 정도의 '가벼움'이 선진 사회에서 느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무게감'와 대비되는 듯 했다. 모쪼록 우리 사회에서도 이슈 및 위기관리의 정도(正)와 정석()의 차이가 점차 줄어 들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2009. 5. 5. 21:02

동물광고 논란

최근 세계적인 동물애호단체 PETA는 삼성전자 유럽지사에서 제작의뢰한 동영상광고(CCC)를 내려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고 이에 대해서 삼성전자가 반박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해당 동영상은 유럽의 바이럴 마케팅 회사에서 양치기와 양치기 개들을 이용해 양떼들을 몰아 특정한 이미지를 만들고, 디지털 작업을 통해 완성되었다. 하지만 PETA에서는 광고제작에 양치기 개를 동원함으로써 양들을 학대했다며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PETA는 삼성전자에게 "시대의 흐름을 읽고 새로운 기술을 더욱 인간적이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홍보하라(“Get with the times and promote your new technology in more humane, modern ways”)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와 동영상 제작사는 공동성명을 통해 양떼들에 대한 학대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관련 내용을 보도한 아시아투데이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오락이나 상업적 이익을 목적으로 동물을 잔인하게 다루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면서 "동영상 제작은 전문 양치기들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됐으며 그 과정에서 동물들을 보살피는데 최우선 순위를 뒀다"고 밝혔다.

여기까지의 삼성전자의 답변은 기업의 기본적인 원칙과 가치를 밝히는 통상적인 반박메시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사에는 광고제작에 참여한 한 양치기의 답변을 덧붙여져 있다. 그는 "내 양들은 생존수단이며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밝히고 "완전히 바보들이나 자기 동물을 스트레스 받게 하지 않겠나"라고 언론에 반문했다고 한다.

삼성전자 관계자의 어떤 논리적 설명보다도 양치기의 답변이 간결하게 상황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해 준다. 삼성전자 측에서 적극적으로 양치기의 증언을 기획했다면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작업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양치기들의 의견을 소개했다면 더욱 설득력이 있었겠다.

사실 이러한 광고가 논란이 되리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실제로, PETA Europe의 블로그를 살펴보면 해당 광고에 대한 PETA의 이번 요구가 다소 지나쳤다는 회원들의 글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크리에이티브한 광고들이 크고작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얼마전 McNeil에서 올린 Motrin 광고 역시 의도와 달리 아기엄마들을 화나게 했고 결국 광고를 조기에 중단하고 말았다. 

논란의 가능성이 있다고 참신하고 창의적인 커뮤니케이션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되겠지만 적절한 수준의 대응논리를 개발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한편, 가장 최근에는 기아차 Soul광고가 같은 PETA로부터 '좋은광고'상을 받았다고 한다. 동물을 소재로 한 광고에 대해 당근과 채찍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고 하는 국제적인 시민단체의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고려한다면 기업의 커뮤니케이션은 더욱 신중하게 추진될 필요가 있다. 
2009. 5. 5. 14:00

'궁3' (명품업체 vs 문화재 vs 시민)

한 수입명품업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문화마케팅에 대해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일부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영리기업의 프로젝트가 문화 유적이자 시민공원인 경희궁에서 독점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온라인 동영상과 함께 개관식 리셉션 행사 때문에 공원 출입을 통제당한 시민의 불평과 관련된 기사와 블로그 포스팅이 올라와 있다.   해당 업체가 경희궁에서 진행하고 있는 마케팅 행사는 관계부처 장관과 시장이 다녀갈 정도로 주목 받는 대형 디자인 프로젝트라고 한다. 

일반시민들을 타겟으로 문화마케팅을 펼치는 일반 기업의 경우와 달리  명품업체는 일반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물론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을 수 있고, 결과에 상관없이 어떤 일에든 불평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백억원대의 자금을 투자해서 진행되는 행사였다면 해당 업체에서 다양한 쟁점의 발생 가능성에 대해 예견하고 또 쟁점을 함께 해결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보였어야 하지 않나 생각된다. 현재로서는 해당기업에서 문화유산의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재 관계자들과 지역주민들의 공원이용 편의욕구를 간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허가해 준 서울시와 문화재청 또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해당 명품업체에서는 한국의 옛 궁궐이 지니는 특별한 이미지를 차용하고자 한다. 또한 서울시는 해당 업체가 지니는 명성을 서울시 브랜딩과 관광마케팅에 차용하고자 한다. 반면에 일반 시민들은 궁궐을 시민 공원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문화재 관련단체에서는 문화유산의 상업적 이용 및 훼손가능성에 대한 거부감을 지니고 있었다. 결국 이러한 기대가치의 차이가 논란을 빚고 있다.

좀 더 적극적인 PR관점이 적용되었다면 문화재 관련 담당자와 지역시민의 관점을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궁궐을 압도하는 대규모 시설물이 아니라 궁궐과 같이 어우러질 수 있는 디자인 계획을 수립했다든지, 세계적인 기업답게 안전 및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작업장을 '명품'관리하는 등 전체적인 진행과정에서 명품의 이미지를 품어 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더욱이 특정 기간동안 독점적인 점유를 서울시로부터 허락받았다고는 하지만 정작 공원주변에서는 공원출입 통제 등과 관련된 아무런 공지문도 확인할 수 없었다는게 시민의 항변이다. 

한편, 해당 업체의 CEO는 명품비즈니스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국내 언론의 질문에 대해서 브랜드 정체성의 유지 및 확립을 위한 끊임없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또한 (역설적인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상대방을 배려하는 한국 파트너사들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타깃 고객층이 소수에 국한된다고 하더라도 커뮤니케이션을 구매력을 확보한 고객으로만 한정하고,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도 존중하고 귀를 기울이는 '명품스러운'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