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1. 15:02

4대 강 정비 관련 정부의 국민설득

오래간만에 'P할건 피하고 R릴 건 알리자'라는 업계의 '옛 이야기'를 기사에서 확인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이야기는 정부가 4대 강 정비사업에 '환경관리'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여론을 '관념적으로 제압'하는 방안에 관한 기사의 부제로 달린 것이다. 

기사 내용이 맞다면 정부는 국민과 여론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제압'이라는 표현까지 쓰게 된 것일까? 아마 국민들이 무지하거나 무관심해서 '일부' 사회불만 세력에게 이용당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설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면 정부에서 생각하고 있는 통치행위란 사상과 이념의 시장(market of ideas)에서 싸워 이기는 것을 뜻하는 지도 모르겠다.

만약 정부가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아니라고 본다. 과거 민주주의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시민들의 정치적인 각성과 참여가 있기 전에는 정책입안자들이 추진하는 대로 정책이 실행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국민은 자신들이 옳던 그르던 해당 정책이나 정치인들에 대해서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할 권리를 갖게 되었다. 물론 그 결과에 대해서 온 국민과 국가가 책임을 지게 된다.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 정부'를 뽑은 것도, 다시 '실용 정부(?)'를 뽑은 것도 모두 국민들이지만 매번 그 결과에 대해서 국민들이 만족스러워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정부의 시각에 따르면, 그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역사의 흐름을 가로막는 국민들 때문에 정부가 일손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 이제라도 선제적으로 국민들을 설득시켜 나가야 한다고 인식하게 된 것 같다. 그럼에도 정부가 정책 방향과 의제를 설정한 뒤 그대로 국민들을 이끌고 가려고만 한다면, 이는 대의정치에 어긋난 것이라고 본다. 물론 그동안 정부정책에 대한 크고 작은 반대가 전체 국민여론의 실체에 비해 과도하게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배경을 떠나서 정부가 여론을 '제압'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하게 밝힌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무조건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지금처럼 국민을 설득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는 것은 정부 스스로 아무런 오류가 없음을 가정하는 것이다. 더이상 정부는 정부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이 수립한 정책의 정당성을 궁극적으로 확보할 수는 없다. 민간 기업의 경우, 상품이나 서비스는 시장에서 평가를 받고 있으며 시장의 뜨거운 반응을 얻는 기업만이 성공한다.  정부도 정책이라는 상품을 국민들에게 파는 공공서비스라고 한다면, 여론 시장에서 반응을 얻지 못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스스로 정책품질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닌지, 민의가 제대로 수렴되지 않은 정책인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동안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옛날 이야기'틀에다가 '최신 컨셉'을 곁들여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국민들을 선제적으로 제압, 설득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는 어떠한 실질적인 개선 노력도 없이 계속 같은 답안지에 커버만 바꿔가며 기회가 생길 때마다 다시 제출하는 형국이다.

내 상품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는데 시장이 나를 버렸다는 정부의 시각은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나라전체가 출구를 찾아 움직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순수한 마케팅 부족 또는 홍보의 잘못으로 돌리기에는 정부의 커뮤니케이션관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